명인전이 끝나고, 박웅배 2단과 아프리카 BJ분들이 해설한 VOD를 보았습니다.
해설중에 "오목의 꽃은 무엇인가?" 라는 BJ민시님의 질문이 나오던군요~
장기의 꽃은 뭐고, 바둑의 꽃을 뭐고, 오목의 꽃은 뭐다~ 대강 이런 흐름의 토크였는데...
아무튼 이 이야기를 끄집어낸 이유는 제가 생각하는 "오목의 꽃"에 대해 이야기하기위해서입니다.
어쩌면 사람마다 오목의 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분은 화려하게 연속4를 쳐서 승리하는 VCF승(사연타승수)이 오목의 꽃이라고 말할 것 같기도 하고, 또 교묘하게 흑을 함정에 빠뜨려서 승리하는 백의 금수(禁手)유도가 꽃이라고 말할 분들도 있을거 같구요~
제가 생각하는 "오목의 꽃"은 바로 "오프닝"입니다.
"오프닝"이란 대국을 시작하기에 앞서 어떤주형으로 둘 것인지, 그리고 누가 흑을 잡고, 누가 백을 잡을 것인지, 어떤 초반진행으로 둘 것인지 등에 대해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예전에 어떤분은 오프닝이 파이를 균등하게 나누는 과정이다라고 설명한적이 있는데, 그 비유는 오프닝의 본질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프닝은 좀더 공정한 게임을 위해 만들어진 장치이기도 하지만, 오목을 5를 만들면 이기는 단순한 게임에서 엄청난 심리싸움이 가미된 고급마인드스포츠로 탈바꿈시킨 주역이기 때문이죠.
또한 오프닝은 그 대국을 어떤방향으로 만들어갈지에 대한 전체적인 플랜을 짜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Sushkov VS Makarov 2017 World Championship A-Tournament Round3>
위 사진은 2017년 세계챔피언 Sushkov 8단의 대국모습입니다.
타이머를 확대해 보시면 제한시간 2시간중에 Sushkov 8단은 17분을 소모하면서 깊은 생각에 빠져있네요.
초보분들이나 온라인에서만 오목을 즐기시는 분들은 저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되실수도 있을겁니다.
도대체 왜 돌 3개만 두고 저렇게 고민하는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중인지...
물론 정확히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선수 본인만이 알겠지만, 대략 어느정도는 제 관점에서도 유추해 볼 수가 있습니다.
1. 먼저 눈 앞에 마주 앉은 상대에 대한 주요정보를 되새기면서 상대를 느껴봅니다.
나이가 몇이고, 오목경력은 몇 년이나 되었고, 큰 국제대회는 얼마나 참가했고, 입상경력은 어느정도고, 기풍은 어떠하고, 흑백중 어떤걸 선호하고, 또 흑백 승률은 어느정도되고, 어떤 주형을 즐겨두고, 어떤 주형에는 약점을 보이고, 수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어느정도고, 초중반에 강한선수인지, 중후반에 강한선수인지, 나와는 몇 번 대회에서 만났고, 상대전적이 어떻게 되는지....
2. 오픈할 주형을 선택합니다.
내가 잘 둘 수 있는 주형, 상대가 잘 둘 수 있는 주형, 내가 익숙한 주형, 상대가 익숙한 주형, 상대가 익숙하지 않은 주형, 상대를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주형, 초중반에 승부를 낼 주형을 선택할지, 중후반으로 길게 볼 주형을 선택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전략옵션들을 생각해봅니다.
3.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의 대응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전략을 세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최근 내가 두었던 대국들이 어떤주형이였고, 또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었고, 어떤 장점과 약점을 드러냈는지 또 상대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대응할지, 또는 대응하지 않을지...
내가 이 주형을 오픈하면 상대는 흑을 선택할지 백을 선택할지, 또 5수는 몇 개나 불러야 다시 상대가 흑을 선택할지 백을 선택할지... 5수중에서는 어떤걸 택해야 나한테 조금이라도 유리할지....나의 선택과 상대의 대응 또 그다음 나의 선택... 수십가지의 전략전술 옵션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닙니다.
어떤분들은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상대에게 어떤 전략을 사용할지 미리 정해두면 시간을 아낄 수 있지 않나요?"
물론 일리있는 합리적인 의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오프닝과정에서의 숙고조차도 하나의 전략옵션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죠.
예를들어 10초만에 후다닥 오프닝을 끝내버리면 이 사람은 준비를 어느정도 해왔구나... 또는 단순하게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자기길만 가는 부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반대로 오프닝하는데 10분, 20분 심사숙고한다면 이 사람은 상당히 신중한 사람이구나... 또는 별로 준비를 안했구나... 또는 나를 만나서 당황하고 있구나... 등등 다양한 상대의 반응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미 상대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했어도 상대의 잘못된 판단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오프닝에 20~30분을 소모할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아무 준비가 없어도 빠르고 자신있게 오프닝을 진행하면 상대를 움츠려들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심리적 페이크를 충분히 걸 수 있죠.
<2005한중친선전 (좌) 김규현 당시 3단 VS (우) Zhu Jianfeng 6단>
제가 오목에 대한 열정을 한창 불태우던 2005년으로 넘어가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2005년의 저는 국내대회에서 두 번, 세 번 우승하기 시작하며 그 자신감이 끝을 모르던 시기였습니다.
국내1인자 박정호기사를 연파했고, 렌주클래스에서 수많은 외국선수들에게 오목강의를 하는 등 자타공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수를 알고 있는 선수로 통했었죠.
주진팽 선수와는 대회 전 온라인대결에서 3판을 이겼었기 때문에 비교적 쉬운상대로 판단을 했었습니다.
1라운드에서 만난 그는 오픈과정에서 총 제한시간 90분 가운데 35분 가량을 소모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저는 그러한 상대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는 모습에 오히려 어리석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주진팽 기사는 그 오프닝 장고시간동안 저를 철저히 분석했고, 제 약점을 파고들 플랜을 적절히 선택했으며, 저는 그 전략에 제대로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라운드에서도 저는 중국기사들에게 연패하며 박살이 났죠.ㅎㅎ
그때까지의 저는 리얼(진정한)오목을 알지 못했고, 그저 오목수만 많이 아는 풋내기에 불과했던 것이죠.
일류선수들의 오목 한 판에는 수십가지의 심리전과 치열한 두뇌싸움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오프닝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바로 오프닝을 지배하는 자가 대국을 유리하게 선점할 수 있습니다!
리얼오목의 첫 단추는 바로 오프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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